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문단 편집) === 납북 일본인에게 일본교습을 받은 김현희 === 김현희가 진짜 북한 간첩인지에 대한 의문에 하나의 답을 줄 만한 사건이 [[납북 일본인]] 타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와 관련된 논의이다.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는 기이한 실종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대부분이 젊은 20대 남녀였으며[* 10대 소녀와 50대 여성이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모두 해안가 근처에서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납북]]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1980년]] [[산케이신문]]의 보도였는데, [[북한]]이라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측에서 이 사안에 대해 [[일본 정부]] 측에 귀띔을 했지만 [[일본]]에서는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웃어넘길 정도였고 누구도 인정조차 하지 않은 문제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 들어 [[일본 경찰]]과 [[공안조사청|공안]] 당국은 본 문서의 사건의 주범 [[김현희]]의 증언을 시작으로 [[북한]] 출신의 [[탈북자]]와 망명한 북한 [[공작원]], 북한으로 갔다가 돌아온 [[재일 한국-조선인|재일 한국인]], [[일본인]]의 증언을 토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북한 정부]]가 일본인들을 계획적으로 납치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s32.postimg.org/2_taguchi_p.jpg]] 타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1955-1986?, 당시 22세)는 [[1978년]] 6월 29일 납치되었다. [[도쿄]]의 음식점 점원으로 [[1984년]] [[오사카]] [[중국 요리]]점 [[요리사]]였다가 [[납북]]된 하라 타다아키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1986년 남편이 병사하고 같은 해에 교통사고로 사망, 홍수로 묘지가 유실되었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주범 김현희가 '이은혜라는 여성에게 일본인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라고 증언하자 몽타주를 그리게 하여 1988년 일본 각지에 '[[1980년]] 이전에 행방불명된 이 여성을 알고 계십니까?'라는 포스터를 붙이고 대대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1991년에 들어 [[1978년]]에 실종된 타쿠치 야에코가 '이은혜'와 동일인인 것으로 추정했으며, 김현희와 공작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교관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일본 조사단이 [[서울]]에 수감되어 있던 김현희와 직접 면회, 동년배 여성의 사진 10장을 뿌리고 이 중에서 교육관이었던 사람을 찾으라고 지시했을 때, 김현희가 타쿠치 야에코의 사진을 보고 정확하게 '이 사람'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타쿠치 야에코=이은혜가 맞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북한은 타구치 야에코가 이은혜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http://blog.daum.net/kmozzart/12614|납북 일본인 관련 글]] > 북한은 이은혜로 하여금 김현희 씨에게 일본어와 관습을 가르쳐 그를 일본화 했다. 김현희씨가 이은혜 선생으로부터 일어를 배운 것은 그가 대남전복활동과 테러를 할 때 일본인으로 가장하기 위해서였다. > 김현희 씨에게 일어와 일본습관 등 일본인화 교육을 한 이은혜에 대해서는 김현희 고백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제1부에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그녀는 1978~79년경 일본해안에서 피랍, 선박편으로 북한으로 끌려갔다. > 이은혜의 신원은 한․일수사기관 공조수사로 1991년 5월 비로소 자세하게 밝혀졌다. 그는 도쿄 도요시마에서 거주하던 타쿠치 아예코(당시 22세)라는 여성이며 여상고를 중퇴했고 재학당시 배구선수로 활약했으며 그후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할 때 <치도세>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 타쿠치(은혜)는 1978년 북한에 납북돼 1981년 7월 4일부터 1983년 3월까지 평양부근 동북리 3호초대소에서 김현희씨에게 일본인화 교육을 담당했다. 김현희씨는 1991년 서울을 방문한 일본경찰과의 면담때 타쿠치의 사진을 정확하게 골라냄으로써 타쿠치의 납북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 [[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1314240782450|김현희와 이은혜]] >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는 1970년대~1980년대에 주로 일어났다. 이에 일본은 북한측에 납치 문제를 강력히 문제제기했지만 북한은 그간 납치 사실 자체를 완강히 부인해왔다. 그러다 북한은 2002년 1차 북일정상회담에서 사상 처음으로 납북 사실을 시인하게 된다. > 북한은 납북자 중 5명이 생존했고 8명이 사망했으며 2명은 납북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은 5명의 생존자와 함께 2명의 사망자 유골을 일본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북한은 나머지 6명의 사망자 유해는 홍수로 유실됐다고 설명했다. > 그러나 일본측의 확인 결과, ‘8명은 사망, 2명은 납북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북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전무했다. > [[http://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3598|북한의 일본인 납치 확인과정]] 요약하자면, 북한이 일본인을 십수 명을 납치하고, 간첩 양성 등에 활용한 사실에 대해서는 1980년대 한국, 일본 당시 모두 그다지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김현희의 이은혜라는 일본인에 대한 증언 이후에, 1988년경 일본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이슈가 되고 본격적인 조사가 들어간 것이다. 김현희의 증언으로 몽타주를 그린 이후에 일본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조사하다 보니 타쿠치 야에코라는 일본인 실종자와 유사하다는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후 1991년 일본의 조사단에 의해서, 김현희가 10장의 사진 중 타쿠치를 정확히 찾아냈으니 일본 정부는 타쿠치가 납북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거기에 2002년 북한 일본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측이 납북자 신원을 공개하면서, 타쿠치 야에코의 납북도 공식적으로 확인된다. 사실 보통 김현희에 대한 의문을 이야기하는 측에서는 이은혜의 존재에 대해서도 김현희의 주장뿐이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즉, 타쿠치 아에코가 납북자인 건 맞지만 김현희가 말한 이은혜는 타쿠치와 동일인이 아니거나 이은혜 자체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586&aid=0000002388| ##]] [* 인터뷰내용: 김현희는 과거 납북된 일본인 타쿠치 야에코가 북한에서 자신의 일본어 선생님이었다고 말했지만 그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 타쿠치 야에코가 이은혜라는 한국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안기부가 내놓은 발표 내용은 김현희의 진술에만 기반한 것이다.] 그런데, 김현희가 북한과 무관하고, 이은혜라는 일본인도 상상의 산물이라면, '김현희의 상상으로 만든 이은혜라는 가짜 몽타주를 만들었더니, 우연히 비슷하게 생긴 타쿠치 아에코라는 실종자가 나왔고 하필 그 실종자가 진짜로 납북자였다.'라는 것이 되는데 정말 정말 희박한 확률일 수밖에 없다. [[납북 일본인]] 항목을 보면 나오지만 한국 안기부는 이미 1980년부터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으므로, 어느 정도 정보를 미리 파악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 아니고 안기부의 공작 관련 인사라는 주장대로라면, 안기부가 다른 경로를 통해 납북자였던 타쿠치 야에코의 신상을 미리 파악하고 김현희를 시켜서 공작을 시작했다는 건데,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실을 아는 것과, 실제로 구체적으로 납치된 일본인의 신상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사실 안기부의 북한 정보 수집 능력이 그 정도로 대단할지도 의문이다. 이런 이유로 최소한 김현희가 실제로 북한 출신이라는 것은 인정받게 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